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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결의(서) 제도는 맥가이버칼?: ‘약방에 감초’도 과하면 문제; 2009.09.15 12:04 입력 | 2009.10.19 23: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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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결의서 징구는 맥가이버칼인가? 
‘약방에 감초’도 과하면 문제 
강요된 동의서 징구 ‘피해’ 커 
 
지금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에 속한 사람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이들 중 많은 이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였던 외화 하나가 있었다. 미국 ABC사가 방영했던 ‘맥가이버’가 바로 그것. 드라마에서 주인공 맥가이버(리처드 딘 앤더슨)는 비밀 첩보 임무를 수행하면서 칼 하나를 이용해 기발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이 때문에 그때 당시 유행했던 게 바로 ‘맥가이버칼’이다. 그것은 다양한 종류의 칼들이 하나에 모여 있어 ‘만능 칼’로도 불렸다. 
이런 ‘만능 칼’이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 현장에도 존재한다. 바로 ‘서면결의(서)’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서면결의란 법률 용어로, 유한 회사 따위에서 총회를 열지 않고 안건에 대한 의사 표시를 우편을 통한 서면으로 하는 결의를 말한다. 정비사업장에선 일반적으로 조합이나 정비업체, 시공사 등 이해관계자들이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요긴하게 이용하고 있다. 
서면결의는 총회 등에 직접 참석하기 어려운 조합원 등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구한 것이므로 이들이 불참한 상황에서도 마치 참석 후 의사를 표시한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 이로 인해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정비사업 기간을 줄이는 데 ‘약방에 감초’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바로 서면결의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최근 들어 이 서면결의에 대한 불만과 문제 제기가 부쩍 늘어난 감이 없지 않다. 
지난해 서울 성북구 J구역 재개발 사업장에서 드러난 문제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주민총회가 열리기 전 추진위원장과 정비업체가 주민들로부터 미리 서면결의를 받아 사실상 총회에 상정할 안건을 의결해 놓은 것.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상태에서 주민총회는 요식행위를 위한 ‘쇼’로 전락했고, 직접 총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상당수 재개발ㆍ재건축 정비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 S 씨는 “총회에 참석치 못하는 조합원의 의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집행부의 전횡 도구로 전락한 것”이라며 “제도 개선 없인 ‘공산당’ 식 사업 추진이 난무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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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청취 봉쇄ㆍ변론 기회 박탈 
도정법이 외려 여론 왜곡 부추겨 
 
서면결의 제도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총회에서 각각의 안건에 대해 반대 측 의견을 청취할 기회가 원천 봉쇄된다는 점, 임원 해임 총회에서 해임 대상자가 자신의 해임 사유를 해명할 기회마저 박탈된다는 점 등도 이 제도가 지닌 맹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는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에 서면결의 이용 등에 관한 제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총회 개최에 대해 도정법 제24조 2항은 ‘총회는 제23조 4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조합장의 직권 또는 조합원 5분의 1 또는 대의원 3분의 2 이상의 요구로 조합장이 소집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 조항에 의거해 조합장 등은 ‘서면결의’라는 간단한 절차만으로도 총회를 마음대로 개최할 수 있다. 더욱이 이렇게 열린 총회에서 같은 법 제20조 제1항 일부 안건 및 조합 설립 등에 관한 사항을 제외한 웬만한 일들은 ‘조합원 과반수 참석, 참석자 과반수 찬성’ 시 의결할 수 있어 얼마든지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유도할 수 있는 실정이다. 
또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이웃이 서면결의를 요청할 경우 대놓고 반대 의사를 표시할 수 없어 조합원의 의견이 왜곡될 수 있다. 행여나 ‘반대’했다는 게 알려지면 동네에서 ‘왕따’ 당하기 일쑤며, 주민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대해 마포구 A 재개발 사업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조합에서 나온 사람이라며 이해하기도 쉽지 않은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된다고 했다”며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도장을) 찍어주고 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P 씨는 “도장만 찍으면 (모두가 만족할 만큼) 잘 해결된다고 했다. 그런데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 결국 이웃과 척을 지게 됐다”며 그 억울함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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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 동의 어렵다?…OS 동원하면 말끔 
관리ㆍ감독 못해 그 피해는 조합원 몫 
 
물론 일각에선 조합 집행부라 해도 서면결의를 포함한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란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무너뜨리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OS다. OS란 ‘Outsourcing’의 약자로, 조합원들을 상대로 오랫동안 홍보ㆍ설득을 하는 외주 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추진위원회(추진위) 혹은 조합 등과 관련된 정비업체 또는 시공사가 고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이들의 관리ㆍ감독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우선 이들이 실제로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는 지 파악할 수조차 없다. OS는 실제 일한 시간이나 그들이 수령한 동의서 수량에 상관없이 무조건 일당을 받는다. 업계 관행상 이들의 일당은 많게는 17만 원에 달한다. 결국 이 돈은 나중에 다 정비업체나 시공사들이 조합원의 돈에서 받아가는 것이므로 OS는 동원하는 만큼 고스란히 조합원들의 손실로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일부 정비업체나 시공사는 실제로 고용한 OS보다 많은 숫자를 고용했다며 부당하게 용역비를 청구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해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그것의 부당함을 문제 삼거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는 조합의 처지다. OS 고용 업체가 “과반 혹은 (필요 시) 그 만큼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책임질 것이냐”라고 물으면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것. 결국 사업의 주체면서도 실제론 이렇다 할 힘이 없는 조합은 ‘눈을 뜨고도 코를 베이는’ 어처구니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클라이맥스는 결의서‘조작’ 
필요악인 만큼 꼭 개선해야 
 
지금까지 나열한 문제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서면결의 용지(결의서)를 조작하는 행위다. 지난 7월 29일 개최됐던 ‘성남 K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 주민총회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이날 총회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고 상정됐던 안건은 처리되지 못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총회가 성원이 부족해 무산된 ‘코미디’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바로 서면결의 용지. ‘성남 K 주민대표회의’라는 복사 방지 스티커까지 붙여진 서면결의 용지에 일련번호가 없었던 것이다. 일련번호가 없을 경우 서면결의 용지가 정확히 몇 장이나 우편으로 보내졌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조합 집행부 등이 회신되지도 않은 서면결의 용지를 조작해 포함시켰더라도 사실상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인감증명서 첨부나, 인감도장 등 서면결의(서) 날인에 대한 기준이 없어 아무나 도장을 만들어 찍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주민대책위원회 측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불법 복제된 도장으로 ‘서면결의’ 용지에 날인한 경우가 적발된 적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서면결의 제도는 여전히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정비사업의 관건이 ‘빠른 속도’인 만큼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아직까지 이만한 제도를 찾기 힘들기 때문. 
따라서 서면결의 제도의 근간은 유지하되 앞서 제시됐던 문제점들은 이른 시일 내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자문에 응한 업계 전문가 K 씨는 “서면결의 제도는 일종의 필요악”이라고 말했다. 이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선 꼭 필요한 제도이나, 일부 사업장에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는 만큼 하루빨리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