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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法 “백지동의서 의한 조합설립 무효 아냐”: 2010.10.29 18:11 입력 | 2010.11.17 00:18 수정

[도시재생신문=정훈 기자] 이른바 ‘백지동의서’에 기초한 조합 설립 동의와 그에 대한 설립인가 처분을 당연 무효라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백지동의서’란 ▲건축물의 설계 개요 ▲개략적인 건축물 철거ㆍ신축비용 등을 기재하지 않은 채 토지등소유자의 이름과 도장만 찍은 동의서를 말한다. 지난 1월 대법원이 이러한 동의서를 ‘무효’라 판단,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동6구역 재개발조합설립 인가를 당연무효 판결한 업계는 상당한 파장을 겪었다.
 
29일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대법원 제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지난 28일 소유권이전등기 등(2009다29380)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원심(서울고등법원 2009. 3.13 선고 2008나50365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ㆍ환송했다.
 
원고인 서울 노원구 월계동 A재건축 조합은 지난 2006년 6월 구역 내 토지 소유자 166명 중 122명(73.5%), 건축물 소유자 143명 중 115명(80.4%)의 동의를 얻어 노원구청장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하지만 원고의 전신 격인 정비사업조합 설립추진위원회가 동의서 서식 중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항목을 공란으로 둔 채 토지등소유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은 다음 여기에 일괄 수기로 철거비 7억5000만 원과 신축비 630억 원을 합한 637억5000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충했다.
 
이후 조합 측이 피고 송 모 씨 등 8명을 상대로 매도청구권을 행사하자 이들은 “조합 설립에 쓰인 동의서가 백지동의서이므로 무효이고 무효인 조합에 의한 매도청구권 행사 역시 효력이 없다”고 맞서 분쟁이 빚어졌다.
 
원심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재건축 참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비용 분담의 기본이 되는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항목조차 정해지지 않은 채 이뤄진 원고의 설립 동의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유효한 설립 동의를 전제로 한 원고의 매도청구권 행사 역시 (설립 동의가 무효이므로) 이유 없다고 배척했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2007.12.21 법률 제878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ㆍ도시정비법)과 법 시행령이 ‘재건축 조합 설립을 위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는 건축물의 철거ㆍ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 및 그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 등이 기재된 동의서에 동의를 받는 방법으로 한다’는 규정이 근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 수긍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재건축 사업에 있어서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관할 행정청의 조합설립인가와 등기에 의해 설립되고 그에 대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는 조합설립인가 처분이라는 행정처분을 하는 데 필요한 절차적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그러므로 조합 설립 동의에 흠이 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조합설립인가 처분이 취소되거나 당연 무효로 되지 않는 한 (해당) 조합은 여전히 사업시행자로서의 지위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조합 설립 동의의 흠을 이유로 원고의 매도청구권 행사 등을 다투기 위해서는 조합 설립 동의가 위법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나아가 그로 인해 조합설립인가 처분이 적법하게 취소됐거나 그 하자가 중대ㆍ명백해 당연 무효임을 주장ㆍ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해 ▲원고가 지난 2006년 5월 조합창립총회를 개최하고 같은 해 6월 노원구청장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후 등기까지 마친 점 ▲토지등소유자가 조합 설립 동의를 할 당시 동의서상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항목이 공란이었으나 행정청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기 위해 제출한 동의서에는 위 공란이 모두 기재돼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점 등을 알 수 있다며 “원심 판결에는 조합 설립 동의와 그 인가 처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조합설립인가 신청 시 제출된 동의서에 해당 항목이 기재돼 있었던 이상 조합 설립 동의 당시에 이 부분이 공란이었다고 해도 이를 인가한 행정청의 조합설립인가 처분이 당연 무효라고 할 수 없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항목이 공란인 (백지)동의서에 의해 동의가 이뤄졌으므로 조합 설립 동의가 당연 무효라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배척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 6월 서울행정법원이 동대문구 B조합을 상대로 이곳 조합원이 제기한 ‘조합 설립 무효 확인’ 청구를 인용한 것과 지난 8월 대법원이 서울 동대문구 용두5구역의 조합설립인가 취소를 다투는 상고심 선고에서 동대문구청장의 상고를 기각, 해당 조합을 무효로 만든 판결과 배치되는 것이어서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지난 수개월 동안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백지동의서에 의해 설립된) 일선 조합들로서는 이와 관련된 시름을 덜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아가 백지동의서 때문에 이미 설립 무효 판결을 받은 조합들의 경우에는 (이를 바탕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이와 관련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