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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등소유자 미확정 상태 조합설립동의서 무효: 2010.06.24 14:08 입력 | 2010.06.24 22:12 수정

정비구역지정 전(前)에 설립된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의 효력을 놓고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토지등소유자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동의서를 근거로 이뤄진 조합설립인가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고등법원 행정 제2부는 지난달 19일 조합 설립 무효 등을 다룬 항소심(2009누6100) 선고에서 1심(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09. 7. 2 선고 2009가합1039 판결)을 인정, 원고(피항소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로써 1심에서 인용됐던 해당 조합의 설립인가 처분은 무효임이 재차 확인됐다.
 
부산광역시 A구역(재개발)의 조합원인 원고들은 해당 조합을 상대로 조합 설립이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고, 조합 측이 항소해 소송이 이어졌다.
 
이후 원고들의 신청에 따라 피고가 부산시 B구청장으로 변경됐고, 청구 취지도 피고의 A구역 추진위에 대한 조합설립인가 처분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원고들이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조합설립 무효확인 소송’은 취하됐고 양측의 법정 공방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부산시장은 지난 2006년 부산시 B구 일대 13만2100㎡를 재개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피고(B구청장)는 이곳에서 활동 중이던 추진위의 신청을 받아 그 구성을 승인했다.
 
이듬해인 지난 2007년 부산시장은 ‘2010년 부산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에 의거, B구 일대 13만5040㎡를 A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같은 해에 열린 A구역 조합창립총회에는 토지등소유자 876명 중 497~502명의 출석했다. 당시 상정된 안건은 출석자 대부분의 찬성으로 의결됐는데, 제1호 안건인 재개발 결의에 대해서는 494명이 찬성했다.
 
이후 추진위는 피고에게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했다. 피고는 동의서 등을 검토해 A구역 토지등소유자를 865명으로, 동의자를 697명으로 집계해 동의율을 80.58%로 산정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조합설립인가를 내줬다.
 
그러자 원고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조합설립인가 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토지등소유자의 (조합 설립) 동의서가 존재하지만 그 동의서가 작성되고 건네질 당시에는 정비구역지정이 이뤄지지 않은 점
 
▲동의서에 ‘신축 건축물의 설계 개요’ 및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등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공란 보충 권한을 위임받지도 않은 추진위가 이 부분을 일괄적으로 스탬프로 찍는 방식으로 기재, 이를 피고에게 제출한 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상 추진위는 정비구역지정 이후에 구성ㆍ승인받을 수 있는데 A구역 추진위는 그 이전에 구성ㆍ승인된 점
 
▲동의서상 비용 분담 사항 등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에 불과한 점 등이다.
 

◆ 도시정비법상 사업시행 절차와 조합의 설립 요건
원고들에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도시정비법상의 사업시행 절차와 조합의 설립 요건 등에 대해 살펴봤다.
 
현행법상 정비사업 시행 절차는 ‘정비예정구역지정-정비구역지정-추진위 승인-조합설립인가-사업시행인가-관리처분인가-착공’ 등으로 진행된다.
 
게다가 추진위가 조합을 설립하고자 할 때에는 토지등소유자 4/5 이상의 동의를 얻어 시장ㆍ군수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도시정비법상 ‘토지등소유자’는 정비구역 안에 소재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자, 혹은 그 지상권자를 의미한다.
 
같은 법에는 또 ‘시장ㆍ군수는 정비구역 및 그 면적 등이 포함된 정비계획을 수립해 시ㆍ도지사에게 정비구역지정을 신청하고, 시ㆍ도지사가 정비구역지정을 한다’고 돼 있다.
 
이때 토지등소유자의 동의는 동의서에 토지등소유자가 인감증명서를 첨부해 인감도장을 날인함으로써 성립된다. 위 동의서에 기재되는 내용은 ▲건설되는 건축물의 설계 개요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 ▲제2호 비용 분담에 관한 사항 ▲사업 완료 후 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 ▲조합 정관 등이다.
 
이와 같은 요건이 충족된 경우 추진위는 조합원 명부 등을 첨부해 관할 행정청에 제출함으로써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게 된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재개발 조합이 설립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도 주된 요건이 ‘토지등소유자 4/5 이상의 동의’라 할 것이고, 그 동의는 정비사업의 주요 내용이 명시된 동의서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점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이러한 동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정비구역지정과 이에 따른 토지등소유자의 범위가 확정돼 있어야 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 동의서 작성시기와 법정사항 결의
A구역 추진위가 동의서를 징구하기 시작한 시점과 동의서상의 법정 기재 사항에 대한 하자도 이번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위 추진위는 지난 2006년 초부터 동의서를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A구역은 아직 정비구역지정이 이뤄지기 전이었다. 따라서 정비구역지정을 전제로 한 토지등소유자의 범위 자체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고, 개략적인 정비사업의 계획도 수립할 수 없는 시기였다.
 
당연히 동의서상 법정 기재 사항인 ‘구역 명칭’과 ‘신축 건물의 설계 개요’ 등을 기재할 수 없었고, 재판부는 적법한 토지등소유자의 동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추진위가 피고에게 제출한 동의서 대부분은 적법한 동의서가 작성될 수 있었던 시점이 아닌 정비구역지정일 이전에 작성됐고 ▲‘신축 건물의 설계 개요’ 등은 법정 기재 사항으로 정비사업의 핵심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위 추진위가 징구한 동의서에는 누락됐기 때문에 하자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 공란 보충권한 인정해도 동의율 미달
이러한 상황에서 조합설립인가 무효 판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동의서상의 공란을 보충하는 권한을 인정하더라도 해당 추진위가 조합을 설립하는 데 필요한 동의율을 충족시키지 못한 점이었다.
 
A구역 추진위는 앞서 언급했던 동의서상의 공란을 조합창립총회를 근거로 해 스탬프로 찍는 방식으로 채워 넣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동의서는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토지등소유자의 개별적 의사가 표시된 문서이기 때문에 동의서상 공란에 대한 보충 권한 역시 해당 토지등소유자 개개인에게 있다”면서 “공란 상태로 작성됐던 동의서 전부에 대한 보충 권한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조합창립총회에 출석해 위 결의에 찬성한 토지등소유자는 보충 권한을 조합 측에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안건에 찬성한 496명의 동의성에 대한 보충 행위는 적법한 보충 권한에 의한 것이므로 이들 동의서상의 하자는 보완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보충 권한을 조합에 위임한 토지등소유자 496명 전부를 동의서를 제출한 (적법한) 토지등소유자로 본다고 해도 동의율은 57%(496/865)에 그친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A구역 조합설립인가 처분에는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으므로 그 처분은 무효”라며 “원고들의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한다”고 판결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