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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4구역 조합원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정비업체 직원은 뇌물수수로 구속, 조합은 1년에 10억 ‘펑펑’ 써; 2010.06.03 13:57 입력 | 2010.06.03 21:36 수정

서울시내 한 재개발 사업장에서 연이은 악재로 조합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4구역 재개발 현장을 두고 하는 얘기다. 이곳은 최근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 정비업체 L사의 임직원이 시공사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게다가 사업시행인가도 받기 전에 1년 사업비로 10억 원 가까이 쓰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 데 이어 조합과 얽힌 각종 의혹이 난무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 정비업체 임직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의정부지방검찰청은 최근 대형 건설업체로부터 시공사 선정 대가 명목으로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정비업체 L사 전무 김 모 씨와 회계 담당자 신 모 씨 등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L사 사장 김 모 씨와 공모해 지난해 말 D건설로부터 상계4구역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로 선정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8억7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김 전무는 또 다른 D건설로부터 경기 부천시 소사본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시공사로 선정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3억6000여만 원, B건설로부터 경기 파주시 문산읍 선유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 시공사로 선정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3억2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신 씨 역시 사장 김 모 씨와 공모해 지난해 말 D건설로부터 서울 영등포1-26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시공사로 선정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건설업체들은 정비사업의 인ㆍ허가와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등에 관여할 수 있는 정비업체에 적극적으로 ‘로비(lobby)’를 벌였고 해당 구역의 정비업체인 L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금품을 챙겼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이들 건설업체는 뇌물 제공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제3의 업체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상계4구역 시공사로 선정된 D건설은 정비업체 L사의 소개로 용역업체 2곳과 전수조사 계약을 체결하고 각각 4억 원씩의 용역비를 지급했다.
 
소사본1-1구역의 시공권을 수주한 D건설은 공사 수주와 관련해 홍보대행사와 계약을 체결, 홍보비 3억 원을 지급했다.
 
검찰은 용역업체와 홍보대행사에게 지급한 비용이 그대로 L사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합법적인 비용 처리를 했지만 실제로는 시공사 선정 청탁 명목으로 건넨 뇌물이라는 것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L사가 정비업계에서 차지했던 위치로 볼 때, 수사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업계 상위권에 속하는 L사와 연결되지 않은 건설사가 없어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건설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L사(社)의 김 사장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업계 유명 인사”라며 “예전부터 시공사 선정과 관련해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당 건설사들은 뇌물 제공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L사와 홍보대행사, 용역업체 간에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D건설 관계자는 “용역업체로부터 전수조사 성과물을 받는 등 계약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수익성이 낮았던 상계4구역은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 아니라 굳이 금품을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D건설 관계자는 “수주와 관련해 홍보대행사를 선정해 일을 시킨 적은 있지만 L사 김 사장에게 금품을 주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는 전언이다. B건설 관계자 역시 “담당 부장이 검찰에 나가 조사는 받았지만 회사와는 상관없는 일로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현재 도피 중인 L사 사장 김 모 씨가 체포돼야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하기 곤란하다”면서 “현재로서는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 씨의 신변과 증언 등이 확보돼야 수사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시행인가도 받기 전에 10억 썼다?
정비사업에 있어 조합과 ‘이인삼각(二人三脚)’을 이뤄야 할 정비업체가 비리로 인한 검찰 수사로 사실상 업무가 마비된 상황에서 조합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난무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특히 조합 운영비가 과도하게 집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일부 조합원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조합원 L씨는 “우리 구역은 건축 연한이 기준에 미달되는 곳이 많아 애당초 개발 필요성이 많지 않았던 곳”이라면서 “게다가 조합원 상당수가 노인이라 재개발에 대한 관심도 적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작년 한 해에만 10억 원을 썼다고 하니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벌써부터 추가부담금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는데 조합이 운영비로 쓴 돈도 결국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돈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실제로 지난 3월에 열린 정기총회 자료를 보면, 상계4구역 조합은 지난해 1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업비로 9억5800만 원가량 쓴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는 측량비와 촉진계획 변경 용역비, 교통영향분석 용역비 등이 포함돼 있지만 이곳 조합원들은 비리에 연루된 L사에게 행정 용역비로 6억 원 이상이 집행됐다는 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조합원 Y씨는 “개발에 문외한이라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1년에 정비업체 용역비로 6억 원이 넘게 쓰였다는 데 불만을 토로하는 조합원들이 많다”며 “조합원 대부분이 관심이 적어 아직 크게 문제 삼고 있진 않지만 이러한 사실이 확산되면 상당수 조합원들이 반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 경과 등을 살펴볼 때 1년 사업비로 10억 원 가까이 집행된 것에 대해 ‘과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특히 ▲상계4구역이 지난 2008년 10월에 추진위원회가 관할 구청의 승인을 받으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고 이듬해인 작년 1월에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하면 이곳 재개발이 본격화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점 ▲정비업체가 연루된 비리가 터진 점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의혹을 품을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사업시행인가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이 과도한 사업비 집행이 이뤄졌다면 앞으로 들어갈 비용이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예측하기도 싫다는 것이 이곳에서 만난 조합원들의 일관된 반응이었다.
 
조합원 Y씨는 “지난해 4월 열린 시공사선정총회 며칠 전부터 용역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동네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더니, 각종 물품과 식사 등을 제공하며 조합원들을 들뜨게 만들었다”며 “이러한 행위가 결국 3.3㎡당 379만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제시한 D건설을 시공사로 만들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우리가 지게 됐다”고 성토했다.
 
그는 “생계를 꾸리기에 급급한 조합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며 “조합원들의 무지와 무관심 탓에 조합 집행부와 협력업체 등이 마음 놓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조합원 K씨는 “사업성도 나오질 않는 이곳 재개발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일각에서는 ‘조합장이 월권을 하면서 불필요한 사업까지 손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밖에 ▲조합 운영에 있어 투명성이 떨어지는 점 ▲OS요원 등에게 지급되는 비용이 많다는 점 ▲현 단계에서 사업비가 과도하다는 점 등을 문제로 꼽았다.
 
또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곳 조합원 대부분은 생업도 아닌 조합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에 반대파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지난 2년여 동안 바른 길로 가지 못하는 우리 구역의 사업 방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