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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위에 군림하려는 안하무인 조합장 - 대농ㆍ신안: 2009.09.16 17:35 입력 | 2009.10.19 23:52 수정

안하무인 조합장, 法위에 군림하려는가? 
직무 정지 판결 나온 날 입찰 공고 내 
제2차 주민자치 공청회…희망 엿보여 
 
‘지명경쟁입찰’이란 카드를 내세워 조합을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던 정비사업조합장이 법마저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 제13부는 지난 5월 개최됐던 대농ㆍ신안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이하 본 정비사업) 조합장 박 모 씨의 해임을 위한 임시총회(본보 시험판ㆍ2009년 8월 12일자 1, 3면 참조)에서 그의 해임안이 가결된 것을 근거로 박 씨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같은 날 박 씨는 ‘지명경쟁입찰’ 방식의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냈다. 법원에 의해 조합장 자격을 박탈당한 이가 그를 무시한 채 시공사 선정이란 중요한 사업 절차를 이행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셈. 
이로써 그는 최후의 ‘패’로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어선 게 됐다. 그의 무리수는 일개 정비사업조합장이 법 위에 군림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법원 판결이 나온 날 그에 배치되는 행태를 서슴없이 자행하는 그의 행동에 많은 조합원들이 걱정하고 있다. 
한편 지난 3일 저녁, 동대문구 답십리역 부근에서 본 정비사업의 주민자치 공청회가 열렸다. 지난달 26일에 이어 2번째로 열린 이날 공청회에서는 위와 같은 박 조합장의 독단과 전횡에 대한 성토 못지않게 조합의 미래를 위한 토론 및 질의응답이 이어져 본 정비사업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지난 6년간의 사업 표류와 달리 본 정비사업장에도 새로운 희망의 싹이 틔고 있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본 정비사업의 앞날에 대한 귀추 역시 주목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소 무려 7개 
H건설, 워크아웃 전력에 덜미 잡혀 
P건설 배제는 구색 맞추려는 속셈? 
 
박 조합장 측은 입찰 공고문에 다음과 같은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요소를 기재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조 제5호 규정에 의한 건설업자 또는 주택법 제12조 제1항 규정에 의해 건설업자로 보는 등록사업자 ▲대한건설협회 발표 2009년도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 이내 업체 ▲통보일(8월 28일) 기준 최근 10년 이내 서울시 재개발ㆍ재건축정비사업을 단독(컨소시엄 실적 제외)으로 500세대 이상 준공한 실적이 2건 이상인 업체 ▲워크아웃ㆍ법정관리ㆍ부도ㆍ채권단 관리ㆍ화의 진행 중이거나 이러한 전력이 있는 업체 제외 ▲상기 기준 자격 요건을 갖춘 업체 중 대의원회를 통해 지명한 업체 ▲현장설명회에 참석하고 입찰 참여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 ▲입찰보증금 현금 10억 원을 납부한 업체 등(단, 선정된 시공자는 7일 내에 20억 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문제가 되는 것은 네 번째 조항(음영으로 표시)이다. 이는 박 조합장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H건설에게는 입찰 참가 자체를 막는 독소 조항이될 수 있다. 
H건설은 지난 7월 말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종합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대표 건설사다. 작년에는 매출액 7조 2700억 원, 영업이익 4800억 원을 올려 업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영광 뒤엔 깊은 흉터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과거 H건설이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던 것이 바로 그것. H건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악화된 건설업계 시황 탓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0년대 초 소위 ‘왕자의 난’으로 크게 흔들렸다. 결국 지난 2000년 1차 부도를 냈고 이듬해 5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워크아웃’에 돌입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는 등 인고의 세월을 보낸 바 있다. 비록 2006년 채권단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는 H건설의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남아 있다. 
결국 H건설은 다른 제약 조건들에는 해당 사항이 없거나 타 건설사에 비해 외려 유리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4번 조항 때문에 사실상 시공사로서 지금까지의 기여분도 인정받지 못한 채 입찰조차 참가할 수 없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된 셈이다. 
한편 세 번째 조항 때문에 작년 4월부터 본 정비사업장에 진출해 결과적으로 조합원 간 분쟁을 조장했던 P건설 역시 입찰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P건설은 그 역사가 고작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업체로, 재개발ㆍ재건축 시공 역사 또한 그다지 길지 않다. 게다가 최근 10년간 독자적으로 500세대가 넘는 정비사업을 준공한 실적이 2건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조항은 그동안 박 조합장 측이 자신들과 잠시 한 배를 탔던 P건설을 배제하기 위해 슬쩍 집어넣은 것이란 게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P건설을 끌어안고 갈 경우 박 조합장 측에 반대하는 쪽이 이를 공격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구색 맞추기란 얘기다. 
 
 
법원, “박 씨는 조합장 자격 없다” 
5월 총회 결과가 근거…문제될 수도 
 
지난달 28일 서울북부지방법원 민사 제13부는 박 씨의 조합장 지위를 5월 임시총회 결과를 들어‘자격 없음’으로 판시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박 조합장이 대의원회의 결의 없이 입찰 공고 내용을 변경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 됐다. 5월 임시총회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 시행령 제36조, 도정법 제20ㆍ24조 등을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절차’를 어긴 박 씨를 해임하기 위해 김 모 씨(당시 조합 감사) 등이 발의한 총회였다. 재판부가 이를 근거로 그의 조합장 지위를 박탈한 것은 결국 그가 시공사 선정에 관한 입찰 공고 내용을 임의로 변경한 것에 대해 ‘죄가 있다’고 인정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로 인해 도정법 제23조 제4항에 따라 조합원 1/10 이상의 발의로 개최된 임시총회에서 박 씨의 해임이 결의됐다”면서 “(따라서) 박 씨는 본 정비사업 조합의 조합장 지위를 상실했다”고 명시했다. 
한편 박 조합장은 5월 임시총회에 대해 “조합장 해임에 반대하는 서면결의서 68장을 임시총회에 제출했다”면서 “해임안이 출석 조합원 과반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68명이 낸) 서면결의서가 조합장 해임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볼 다른 자료가 없다”면서 “그것만으로는 임시총회의 의사정족수나 의결정족수가 부족하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박 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재판부는 “7월 정기총회는 박 씨가 소집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해임돼 권한이 없는 자가 정기총회를 소집한 것이므로 그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재판부는 “조합 임원이 총회 결의만으로 연임될 수 있다고 해도 이는 총회 당시 조합 임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서 “7월 정기총회에서 박 씨에 대한 연임 결의는 자격이 없는 자에 대한 것이므로 무효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5월 임시총회 자체가 파행으로 치러졌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박 씨의 조합장 지위를 문제 삼은 것이 향후 부작용을 낳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문에 응한 법무사 K씨는 “임시총회는 문제가 많았다”면서 “이를 근거로 했다면 박 씨 측이 변론 근거로 활용해 외려 재판부를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5월 총회가 발의자 측이 조합원들의 출입을 제한해 조합원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기에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근거로 삼았다면 나중에 박 씨 측이 김 전 감사 등을 공격하는 빌미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3일 2차 주민공청회, 희망의 싹을 보여주다 
 
 
지난 3일 1차 주민 공청회가 열렸던 동일한 장소에서 2차 주민자치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50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이 참석했는데, 첫 번째 공청회와 달라진 점은 이제껏 박 조합장을 옹호하던 (조합 측) 인사들 중에서도 참가자가 늘었다는 점이었다. 입구에서 만난 김 전 감사는 “조합 측 사람도 몇 명 왔다”면서 “이제 조합 지지자들도 ‘진실’을 알고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 총무이사 신 모 씨는 이날 “재건축은 개인이 자신의 집 한 채를 짓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면서 “이제 중요한 건 조합을 정상화해 일반분양 시 발생할지 모를 ‘미분양’ 리스크를 예방하는 데 대해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총무이사답게 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 정비사업의 리스크를 설명하며 조합원들의 이해도를 높이고, 박 조합장이 추진하려는 ‘지명경쟁입찰’의 유찰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어떤 길이 우리 조합원들에게 가장 이득이 되느냐를 생각할 때”라고 말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 “우리도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몰랐기 때문에 조합장의 독단과 전횡을 막지 못했던 것”이라며 자성을 촉구했다. 신 씨는 발언 말미에 “앞으로 만반의 준비를 해서 조합을 바른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6년간 조합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죄송하다. (한 번만 더) 믿어 주십시오”라고 호소하며 본 정비사업을 마무리 짓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어찌됐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본 정비사업도 정상 궤도에 오를 기회를 맞이한 건 분명하다. 직무가 정지된 박 조합장 측의 반발과 그 과정에서 불거져 나올 그의 무리수가 우려되긴 하나 공청회를 개최한 측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된 것만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잘 극복한다면 본 정비사업은 좋은 결과를 낼 것이란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반적인 평가다. 한 조합원이 말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처럼 조합원 모두가 이제까지의 갈등과 그로 인한 상처를 훌훌 털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날 공청회는 의미가 있다. 아니, 단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 그런 희망의 싹을 틔웠다는 점에서 분명 본 정비사업의 앞날은 밝아질 것이라 예상된다. 
 
 
조합, 현장설명회 강행…직원 모르쇠 일관 
조합장 ‘캐스팅보트’ 상실…결정권 없어 
대의원회 양분돼 진퇴양난, 뭘 해도 무리수 
 
한편 박 조합장 측이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를 지난 4일에 강행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조합 전 총무이사였던 신 모 씨에 따르면 조합 측은 강남 모처에서 현장설명회를 열었고, 신 씨가 당일 오후 3시께 조합 사무실에 나타난 박 조합장에게 항의하자 그는 “내가 추진한 게 아니다”라며 “성 모 이사가 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 역시 이 사실을 확인코자 본 정비사업의 조합에 문의했으나 조합 직원은 “모른다”는 답변만 되뇔 뿐이었다. 해당 조합 직원이 당일 현장설명회 개최 사실에 대해 모른다는 게 이상해 “조합 직원 맞느냐”고 묻자 그는 “직원은 맞는데 (현장설명회 개최 여부는) 잘 모른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는 본보가 연이어 박 씨의 전횡과 말 바꾸기 등에 대해 지적하자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 아닌가란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신 씨의 말대로라면 자격이 없는 ‘조합장’을 대신해 역시 자격이 없는 ‘전 이사’가 현장설명회를 주최했다는 게 되는데, 이 역시 박 씨의 무리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관련 법 어디에도 직무가 정지된 조합장을 대신해 조합원들의 불신임을 받은 전 이사가 지명경쟁입찰과 관련한 현장설명회를 주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의원회가 박 씨 측과 그에 반대하는 측으로 양분돼 서로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는 관련 고시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 또한 그의 무리한 행보를 꼬집을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지난 2006년 8월 제정된 건설교통부장관(현 국토해양부장관) 고시 제2006-331호(이하 고시)는 지명경쟁입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1항에는 ‘지명경쟁에 의한 입찰에 부치고자 할 때는 5인 이상의 입찰 대상자를 지명해 3인 이상의 입찰 참가 신청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제2항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해 지명하고자 하는 경우,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본 정비사업의 경우 도정법 제25조 제1항에 의거해 조합원이 100명이 넘기 때문에 대의원회를 두고 있으며, 대의원은 총 18명이다. 그런데 도정법 시행령 제36조 제1항에는 ‘대의원회의 의장은 조합장이 된다’고 규정돼 있어 현재 본 정비사업 조합의 대의원회는 총 19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조합장 박 씨의 지지자가 9명, 그렇지 아니한 자 역시 9명으로 대의원회가 양분된 상황에서 박 씨가 의장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지금까지의 대의원회 풍경이다. 
문제는 지난달 28일 법원이 조합장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판결을 내리면서 표면화했다. 법원 판결에 따라 조합장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박 씨에겐 대의원으로서의 결정권이 없어지게 된 것. 
따라서 본 정비사업의 대의원회는 현재 18명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봐야 하며 동수로 그 세가 나뉜 상태에선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한 5월 임시총회 결과에 따라 직무가 정지된 박 씨가 대의원으로서 결정권을 행사한 대의원회의 결정은 자격이 없는 자가 행한 것이므로 무효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법원 역시 7월 정기총회 역시 무자격자가 강행한 것이라 그 의사ㆍ의결정족수의 충족 여건과 상관없이 박 씨의 연임은 무효라고 판시한 바, 지난 5월 18일 이후 대의원회의에서 박 씨가 캐스팅보트로서 내린 결정권 역시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시공사 선정에 대해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의원회가 무용지물이 된 상태에서는 이번 지명경쟁입찰에 관하여 관련 고시가 규정한 대의원회 의결이 불가능하므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현장설명회-입찰-지명’의 절차 가운데 ‘지명’은 물 건너 간 것이란 게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설령 조합 측의 입찰 공고 및 현장설명회 개최가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해도 이후 지명경쟁입찰을 강행해 대의원회의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린다면 이 결정은 무효가 될 공산이 크다. 
만약 박 씨 측의 과잉 대응이 시공사를 지명하는 단계에까지 간다면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것으로, 향후 법적인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본 정비사업은 직무가 정지된 조합장의 잇따른 무리수로 인해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진 상태다. 비록 주민자치 공청회에서 희망의 싹을 틔웠다곤 하나 한 번 망가진 조합을 정상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본 정비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