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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동의서조합설립무효’ 서울서 첫 확정판결: 행정행위 하자치유 불인정…조합 다시 설립해야; 2010.09.14 16:50 입력 | 2010.09.17 22:28 수정

도시재생신문 hjeong25.rn@gmail.com

이른바 백지동의서에 근거한 조합 설립이 무효라는 판례가 적용된 서울시내 재개발 사업장이 탄생했다. 재판부는 이곳 조합이 하자가 치유됐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든 동의서 역시 인정하지 않아 해당 구역은 조합 설립을 처음부터 다시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 1월 부산 해운대구 우동6구역 재개발 조합에 대해 백지동의서를 이유로 설립 무효라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바 있지만 서울에서 같은 이유로 조합 설립 무효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지난달 26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5구역의 조합설립인가(2008년 2월) 취소를 다투는 소송의 상고심(2010두2579)에서 피고인 동대문구청장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하급심 재판부가 해당 조합이 그 설립에 필요한 동의서를 받을 당시 동의서상의 하자를 지적하고 이를 근거로 설립 인가를 취소한 데 대해 위법이 없음을 인정하고 피고 측이 이후 새로 동의서를 받아 하자가 치유됐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허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에 따라 백지동의서를 받은 재개발ㆍ재건축 사업장이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최근 국토해양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린 방침에 따라 동의서를 다시 받은 후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관악구 봉천12-1구역, 종로구 돈의문1구역 등은 소송을 겪으면서 조합설립변경인가를 다시 마쳐 원고 ‘각하’ 또는 ‘기각’ 판결을 받아 냈다.
 

◆ 조합설립동의서 하자 지적한 원심 정당
재판부는 조합설립인가 신청 당시 제출한 동의서의 적법성을 따져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재판부는 “원심(서울고등법원 2009.12.23 선고 2009누8429 판결)의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상고이유의 주장과 같은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원심이 1심 판결을 인용해 용두5구역 재개발 정비사업조합 설립추진위원회(추진위)가 정비구역지정 전인 지난 2006년 4월 토지등소유자에게 조합 설립에 관한 동의서를 징구할 당시 해당 동의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음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적어도 97장의 동의서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제외한 나머지 동의서만으로는 관계 법령이 정한 조합 설립 요건(토지등소유자의 3/4 이상)을 충족시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밝힌 이유는 ▲동의서 2쪽의 ‘신축 건물의 설계 개요’,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등이 모두 공란으로 돼 있었던 점 ▲인가 신청 당시 피고에게 제출된 동의서 중 100장이 작성 일자가 변개됐거나 서명 날인란의 기재와 다른 필기구가 사용된 점 ▲97장의 동의서에 첨부된 인감증명서는 정비구역지정 전에 발급된 것인 점 ▲동의서 2쪽의 교체 흔적이 있는 점 등이다.
 
또한 해당 조합이 토지등소유자로부터 위와 같이 동의서 2쪽을 교체하고 작성 일자를 변경하는 것에 대한 사전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제출된 증거만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토지등소유자가 ‘신축 건축물의 설계 개요’와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부분이 공란으로 된 동의서에 미리 서명 날인함으로써 향후 이 부분이 결정되면 그러한 내용에 동의하고 추진위로 하여금 이를 보충하도록 하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피고 및 조합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 행정행위 하자 치유는 원칙적으로 불가
흠이 있는 행정행위의 치유에 대해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행정소송에서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행정처분이 있을 때의 법령과 사실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면서 “처분 후 법령의 개폐나 사실 변동에 의해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어 “흠이 있는 행정행위의 치유는 행정행위의 성질이나 법치주의 관점에서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고 예외적으로 행정행위의 무용한 반복을 피하고 당사자의 법적 안정성을 위해 이를 허용할 때에도 국민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체적 사정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두5구역 조합과 동대문구청(장)은 1심 판결 이후 토지등소유자 318명 중 247명으로부터 새로 조합 설립 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 사건의 흠이 치유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심 재판부는 “조합설립인가 처분은 설권적 처분의 성질을 갖고 있고 흠의 치유를 인정하더라도 원고들을 비롯한 토지등소유자에게 아무런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를 배척했다. 대법원 재판부 역시 이를 정당하고 판단, 위법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훈 기자 hjeong25.r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