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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세우는 건축 ‘도시재생’을 말하다: 2011.11.07 03:53 입력 | 2012.02.02 01:59 수정

송윤창 기자 songyc1@rknews.co.kr

한국보다 앞서 도시화가 진행된 나라들에서 도시재생은 보편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간과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버려진 도시공간들이 도시재생의 대상지로 각광 받고, 도시의 골칫거리였던 옛 공장터가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재개발의 물신적 풍요 때문에, 도시의 역사와 문화, 인간적 가치가 상실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도시의 재생 운동이다. 
 
한국에서도 전면철거 후 새 아파트나 빌딩만 짓는 재개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옛것을 살리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도시의 새로운 가치로 만드는 작업, 개발논리에 밀려 파괴된 지역민들의 커뮤니티를 되살리는 재개발, ‘한국형 도시재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해 선진국의 다양한 도시재생의 성공사례에 대한 학습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해외의 다양한 사례 중에서도 한국과 역사와 문화, 근대적 도시의 형성과 발전과정이 가장 유사한 일본의 도시재생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준다.
 

■ ‘록본기힐즈’와 ‘미드타운’
일본 도쿄의 록본기힐즈는 동경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예전에는 도쿄의 대표 유흥가라는 오명을 가졌던 이곳이, 지금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문화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약 8만㎡인 이곳은 세계인들로부터 ‘21세기형 도심상업지 복합용도개발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민간 건설회사인 ‘모리빌딩’이 개발한 록본기힐즈는 ‘문화중심지구’를 컨셉으로 다양한 문화시설들을 유치했다. 2003년 4월에 문을 연 록본기힐즈는 평일 12만 명, 주말 18만 명, 연간 4500만 명이 찾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명소다. 
 
록본기힐즈가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이유는, 사업 시작에서 완성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17년 중 14년의 주민설득기간을 가졌고, 이 기간 동안 1000회 이상의 주민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게 했다는 점이다.
 
록본기힐즈가 들어선 지구의 소유자는 총 500여명이다. 1988년 처음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마찌쯔꾸리간담회’가 열렸고, 1990년 ‘마찌쯔꾸리협의회’가 결성됐다. 이후 1991년 토지소유자와 임차인들을 중심으로 ‘재개발준비조합’을 결성했고, 1998년 ‘재개발조합’을 설립됐다. 이후 ‘재개발유도지구지정’에 이르는 동안 설명회만 1000여회를 갖는 등 주민들을 설득하는 시간만 14년이 걸렸다. ‘빨리 빨리’만을 외치는 우리의 재개발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상업과 휴식의 상징으로 불리는 미드타운은 록본기힐즈와 함께 일본 도쿄의 상징이다. 미드타운은 록본기힐즈의 성공에 힘입어, 2002년 부동산기업 미쓰이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일본에서 국유지 처분으로 지구계획을 수립한 다음 민간에 일괄매각한 첫 사례로, 방위청 부지였던 땅에 주거와 업무, 상업과 휴식공간을 결합한 복합공간을 만들었다. 사업규모만, 총 면적 약 8만㎡에 약 3700억엔(약 5조2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도쿄 중심의 알짜배기 가장 비싼 땅을 개발하면서, 사업부지의 약 40%를 녹지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도심의 현대적 감각과 자연의 안락함이 잘 조화돼 있어, 도시재생의 대표적 모델로 꼽힌다.
 

■ 창의적 디자인 도시 ‘고베’
1995년 1월 17일, 일본 효고현에서 발생한 남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은 142년 된 일본의 개항도시 고베시를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고베시는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를 기치로 내걸고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진행, 현재 일본의 6대 도시로 우뚝 섰다.
 
1868년 개항 당시 고베시의 인구는 2만명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150만명이 넘는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고베시가 주거·산업·문화가 잘 어우러진 도시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5년 대지진 이후 추진한 도시재생프로젝트 덕분이다. 도시재생은 알록달록한 고베시의 색깔을 한층 뚜렷하게 했다.
 
고베시는 대지진이 발생한 후 2년 만에 항만, 도로, 철도 등의 공익시설과 주택을 모두 계획보다 앞당겨 정비했지만, 도시의 문화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시는 전 고베시민이 참여하는 도시디자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계속 거주하고 싶은 도시, 방문하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도시’ 만들기를 한 결과, 2008년 10월 유네스코로부터 창의적인 디자인 도시로 선정됐다. 
 
고베시 도시디자인은 1868년 서양세력에 항구를 개방한 후, 형성된 이국적 색채를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또한 고베시는 항구도시지만 바다에서 밀려오는 비릿한 냄새와 낡은 회색빛 건물이 없다. 컨테이너선이 정박하는 물류항이라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항구를 문화·관광구역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고베시 최남단에 자리 잡은 포트 아일랜드. 바다를 매립해 1980년대에 완공된 이곳은 항만시설뿐 아니라 주택, 공원, 국제회의장, 전시장, 패션타운, 대규모 물놀이시설 등을 갖춘 복합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또 남쪽 항구에 있던 화물기차역 터 등을 재개발한 고베 하버랜드는 쇼핑, 식사, 오락기능을 갖춰 매일 수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고베시가지를 중심으로 20∼30분 거리에는 각종 산업단지가 조성돼 도시의 경제기능을 담당한다. 
 

■ 일본 도시재생의 특징
위에서 언급한 일본 도시재생의 성공모델들을 살펴보면, 한국의 도시재정비사업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첫 번째는 관이 아닌 민간이 주도가 된 도시재생사업에서도 한국과는 달리, 설득을 통한 사업 참여 유도로 주민 간 갈등을 전혀 일으키지 않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효율적이고 여유 있는 토지의 이용을 통해, 쾌적한 환경과 충분한 주거·업무시설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도시재생을 위하여 옛것을 살리고, 주거·문화생활·경제활동이 모두 가능한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구체적이고 치밀한 계획이 수립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