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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을 능력 상실…가계부채 1000조 어쩌나?: 2011.06.08 16:05 입력 | 2012.01.18 02:30 수정

송윤창 기자 songyc1@rknews.co.kr

지난 5월 30일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한국 은행시스템'과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하반기 한국 경제 운용의 가장 큰 걸림돌로 가계부채 문제를 지적했다. 무디스는 가계부채문제를 지적하면서 단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무디스는 “한국 은행권이 직면하고 있는 주요 신용문제는 이미 높은 수준에서 증가세를 보이는 가계부채”라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자영업자의 사업자금 대출을 포함한 국내 가계대출 규모가 이미 100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에 영세업자가 사채시장에서 빌린 소액대출을 포함할 경우 그 규모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빌린 돈의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데, 돈을 갚아갈 능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디스가 꼽은 비관적 전망의 배경 역시 가계소득의 감소세였다. 
 
실제 물가상승으로 인해 지난해 4분기 실질소득 증가율이 -1.2%를 기록한 가운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3%였다. 올해 1분기(1~3월) 실질소득도 전 분기 보다 0.9% 준 것으로 나타났다. 
 
무디스가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비율이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가계가 한 푼도 쓰지 않고 빚을 갚아도 부채를 전부 상환할 수 없다는 것. 거기에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 10%를 넘던 저축률도 지난해 OECD 최하위권인 2.8%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주택담보대출 중 절반만 주택구입용
 
최근 한국은행의 가계금융조사를 보면 응답자들은 주택담보대출의 48.8%만이 거주 주택이나 부동산을 구입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대답했다. 주택담보대출의 반 이상이 주택 구입 외에 사업 자금과 생활비 등 다른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의 40%, 개인사업자(SOHO) 대출의 51%가 부동산담보대출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 대출의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은 36%로 금융위기 직전인 42%에 비해 6%포인트 하락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은 39.6%로 금융위기 수준을 거의 회복한 상태다. 
 
또 다른 문제는 저축률 하락으로 저신용 계층과 서민들의 부채 상환 능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저축률은 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0%대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이던 가계 저축률이 불과 20년 만에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향후 저축률이 올라갈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인구 고령화속도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저출산율 문제를 감안하면, 향후 국내 가계의 저축 여력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가계의 부양 부담을 나타내는 18세 이상 취업자 대비 공적연금 수급자 수의 비율은 2000년 5.2배에서 2009년 13.3배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문제는 은행이 가계부채 축소 조정에 들어갈 경우, 가계의 부동산 등 실물자산 매각이 늘어나면서 부동산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2010년 국내가계의 평균 자산 구성 내역을 보면, 저축을 비롯한 금융자산의 비중은 21.4%에 불과한 반면 유동성 확보 능력이 떨어지는 부동산자산비율은 7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상환부담이 커지면 금융자산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가계가 주택을 매각해 부채청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실상 주택담보대출의 절반 이상은 사업자금이나, 부족한 가계소비, 또 다른 부채상환에 쓰이고 있다. 가처분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저축률은 역대 최악의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문제를 가볍게만 볼 수 없는 정부와 은행권의 고민을 이해할 수도 있다.


 
 
자영업자 자산대비 부채규모 ‘2배’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28%를 차지하는 자영업자 가구의 총부채가 가처분소득보다 2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통계청이 공동 조사한 ‘2010년 가계금융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영업자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총부채는 199.5%에 달했다. 임금근로자 가구 114.4%, 일용근로자 가구 90.1%보다 2배가량 높았고, 무직 가구 183.4%보다도 높았다.
 
특히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의 경우 자영업자 가구가 78.7%로 가장 높았고 일용근로자 가구 48.6%, 임금근로자 가구 37.3%, 무직 가구 26.9% 순이었다. 반면 경상소득에서는 전체 가구 평균 임금근로자 가구가 4898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자영업자 가구가 4588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부채 보유 가구로만 비교해도 자영업자 가구의 재무건전성이 가장 열악하다. 부채 보유 가구 중 가처분소득 대비 총부채는 자영업자 가구 268.4%, 임금근로자 가구 167.6%, 일용근로자 가구 162.1%로 집계됐다.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역시 106%로 자영업자 가구만 높게 나타났다.
 
반면 자영업자 가구의 자산 총액 대비 저축률은 12.8%로 임금근로자 가구 18%나 일용근로자 가구보다 16.4%보다 낮았다. 부채 보유 가구에서 비교해도 임금근로자 가구 16.2%나 일용근로자 가구 13.4%보다 자영업자 가구 11.8%가 저축률이 낮았다. 빚이 많고 저축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소득 줄고 빚은 늘고…정부·은행권 고민
 
지난 5월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가계신용(가계부채) 잔액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증가해왔다.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와 금융사의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카드 외상구매), 자영업 등 소규모 개인기업, 민간비영리단체 등의 대출을 합친 가계 금융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937조3000억 원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도 가계부채가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이미 1000조 원을 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다. 지난 10년간 가계부채가 3배 가까이 증가한데 비해 소득은 연평균 5% 증가로, 채 50%도 증가하지 못해 과도하게 증가한 부채를 소득으로 뒷받침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다. 
 
반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의 가계부채는 조정 국면에 들어서 우리와는 대조를 보였다. 
 
가계부채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불구하고 한국가계는 지금도 계속해서 빚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가계부채를 향후 한국 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한 이유도 바로 이 지점이다. 
 
2010년 기준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46%로 2007년 136%에서 10%포인트나 높아졌다. 부채가 가처분소득보다 0.5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에도 이 비율이 87.4%에 불과했다. 
 
미국(120%), 영국(161.7%) 등도 높지만 이들 국가들은 각각 136%와 170%를 정점으로 이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우리와는 다르다.
 
또 다른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의 대출 상환 구조의 취약성이다. 대출 만기가 짧은 데다, 대부분인 92.7%가 변동금리(대출금리가 시중금리에 연동)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이자 변동폭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거기에 원금 상환이 시작되면 더욱 심각해진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은 가계의 부담을 고려해 변동금리 대출의 거치기간을 2~5년 연장한 바 있다. 역으로 올해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의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에만 약 64조 원의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부채 가계들이 원금은 갚지 않고, 만기를 연장해 이자만 갚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체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원금을 갚는 대출 비중은 21.6%에 불과했다. 원금상환을 하지 않고 이자만 갚는 대출 가운데 36% 가까이는 거치 기간을 연장하거나 기존 대출을 중도 상환하고 다시 빌리는 방식으로 만기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환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경기가 활황일 때는 괜찮지만 경기가 침체되면 만기 연장이 어렵게 된다는 데 있다. 이자에 원금 상환 부담까지 지게 되면서 가계 파산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택담보대출로 빌린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사업자금과 생활비 등 주택 구입 외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것으로 추정돼 그 심각성은 더해진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가장 큰 고민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최근의 글로벌 경제 상황,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국내 인플레이션상황 등을 감안하면 기준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소득 증가 여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할 경우 가계 파산에 따른 담보가치 하락→금융기관 부실채권 증가→금융기관 도산→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